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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

[한민족과 고조선 한]_7장

by 늘별~*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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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고학적으로 본 한(韓)
1) 한(韓)의 청동기문화
 고고학적으로 살펴보고자하는 한의 청동기문화는 청동기를 소유한 주민이 북방에서 내려와 퍼트렸다는 견해가 과거에 우세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를 살펴보면 청동기 초기 미사리형 토기에서 역삼동 · 흔암리식토기 등으로 점차 발전해간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청동기시대 초기부터 대동강 이남지역에 살면서 외래의 청동기문화를 흡수하고 초기국가를 형성해간 선한 사회의 존재를 바르게 평가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하겠다. 선한사회는 기원전 9~5세기경까지로 무문토기 · 비파형동검 · 고인돌 · 송국리형 취락이 혼합된 전기 청동기시대로 볼 수 있다. 한시기는 기원전 4~2세기경으로 점토대토기와 세형동검문화가 등장 발전하는 시대로 한(진)이 지역 전체를 통괄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삼한 시기는 기원전 2세기이후로 세형동검과 철기문화가 확산되어 마한 · 진한 · 변한의 삼한에 78국의 여러 나라들이 존립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1) 청동기 양상
  청동기시대 한 지역으로 볼 수 있는 한반도 중남부에서 출토된 청동기로는 비파형동검 · 동모 · 동촉 등의 무기류와 동부, 동착 등의 공구류가 대표적이다. 비파형동검은 곡인이 명확한 전형적인 검과 곡인이 미약해지면서 세신화 된 변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한 지역의 비파형동검은 전형적인 동검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깨진 파편이나 재가공한 것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청동기문화의 후기라고 할 수 있는 세형동검문화는 한 지역에서 중서부 지역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삽교천 유역부터 금강 유역과 만경강 유역에 밀집 분포하며, 한강 하류와 임진강 유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묘제는 주로 적석목관묘와 목관묘이다. 무기류로는 세형동검 · 동모 · 동과 등이, 공구류는 동부 · 동착 · 동사가  의기류는 방패형 · 검파형 · 나팔형의 이형동기와 조문경 · 정문경등의 다뉴경, 동령류는 팔주령 · 쌍두령 · 간두령 등이 출토되었다.
  한 지역의 서남부인 영산강유역에서도 적석목관묘에서 세형동검 · 동모 · 동과 등의 무기류, 동부 · 동착 등의 공구류, 조문경과 정문경 및 각종 동령류가 출토된다. 
  한 지역의 동남부인 낙동강 중하류에서는 상주 동령류나 경주 입실리 정문경 등 이른 시기의 유물들도 확인되지만 철기문화가 유입되고 난 이후의 유적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세형동검 · 동모 · 동과와 함께 철검 · 철모 · 철과 등이 확인되며 공구류로는 판상철부 · 철겸 등이 새로 등장한다.41
 한 지역의 청동기 유적을 지역별로 파악해보면
- 중부지역은 예성강 · 임진강 · 한강 유역에 해당되는데 전기 청동기유적은 연안 금곡동과 개성 해평리 유적에서 동검 매납이, 배천 대아리와 홍현리 유적에서 동촉이 출토되었다. 후기 청동기 시기에는 용인 초부리에서 동검 용범이, 화성 동학산에서 동착 용범이 고양 성사리에서 동모 용범이 출토되어 청동기가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연안 오현리에서 세형동검 · 동모 · 다뉴경이, 배천 석산리에서 세형동검과 동과가 출토되었다.
- 중서부 지역은 안성천, 곡교천, 금강, 만경강 유역인데 전기 청동기유적은 대전 비래동과 익산 용화산 유적에서 비파형동검이, 송국리 유적에서 비파형동검 · 동모 · 다뉴경과 동부의 용범이 출토되어 청동기가 제작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후기 청동기시대가 되면 청동기유적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양한 청동기가 나타난다. 동검은 비파형동검의 전통이 남겨진 세형동검이, 다뉴경은 조문경의 형식이 있어 세문경이 성립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후반에는 청동제 검파두식, 전국 연계 철기, 유리제품을 가진 청동기 부장묘가 많다. 유적지는 대전 괴정동, 예산 동서리, 아산 남성리, 청원 비하리, 부여 연화리, 익산 다송리 · 오금산 , 전주 여의동 · 효자동, 부여 합송리 · 구봉리, 대전 탄방동, 공주 봉안리 · 수촌리, 당진 소소리, 논산 월북리, 완주 갈동, 장수 남양리 유적 등이 있다.
- 서남부 지역은 영산강, 보성강 유역과 남해한 일대로 전기 청동기는 송국리식동검과 그 파편 및 재 가공품이 지석묘에서 출토된다. 고흥 운대리, 보성 봉릉리 · 덕치리, 여수 적량동 · 오림동 · 평여동, 승주 우산리 유적 등이 있다. 후기 청동기는 고흥 소록도 유적의 조문경, 영암 장천리 · 신연리, 화순 대곡리 · 백암리, 함평 초포리 유적 등이 있다.
- 동남부 지역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지역이다. 전기 청동기는 해안지역에서는 파편부장이, 내륙에서는 매납하는 경향이 있다. 창원 평성리 유적에서 검병이, 김해 무계리와 거제 아주동 유적에서 동촉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청도 예전동, 사천 이금동, 안동 지례리, 창원 덕천리 · 진동리 유적이 있다. 후기 청동기 전반에는 유적지가 적은 편인데 김해 내동 · 회현리, 합천 영창리 · 임북리, 산청 백운리, 경산 임당, 경주 입실리 유적 등이 있다. 후기 청동기 말에는 유적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세형동검 · 동모 · 동과 등과, 철과 청동괴가 나타났고 대동강지역과 밀접해져 낙랑 · 한식유물이 많이 나타나 급속한 철기화가 진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유적지로는 상주 낙동리, 대구 팔달동 · 만촌동, 경산 임당, 영천 용전리 · 어은동, 경주 조양 · 사라리 · 입실리, 창원 다호리, 김해 양동리, 마산 가포동, 삼천포 마도 · 늑도 유적 등이 있다.42

(2) 토기양상
  청동기시대 한 지역의 토기변화는 아직까지는 단절적인 면이 강하다. 두만강 유역이나 압록강 하류 역에서는 빗살무늬토기에서 무문토기로의 과정이 연속적인 면에 비교된다. 그 원인은 고조선 지역에서 한 지역으로 토기문화가 전파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43 한 지역에서 각목돌대문토기가 최초로 발견된 유적은 하남 미사리 유적인데 B.C.12세기경까지로 본다. 전기 청동기문화는 역삼동, 가락동, 흔암리 등 세 문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역삼동유형은 공렬과 구순 각목문의 문양요소가 단독으로 혹은 결합하여 토기에 시문된다. 가락동유형은 이중 구연단사선문이 토기에 시문되고 대전, 청주를 중심으로 한 금강 중 · 하류에 집중적으로 분포하지만 역삼동유형은 이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 흔암리유형은 역삼동유형과 가락동유형의 토기 문양 요소가 혼합된 토기들이 발견된다. 중기 청동기문화는 송국리형토기의 등장과 확산으로 대표되지만 한강 하류역과 강원도 및 영남 동해안에서는 송국리유형과 달리하는 문화 양상이 나타난다. 강원 영서에는 천전리유형이 있고, 울산 · 경주 · 포항 일대에서는 검단리유형이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후기 청동기문화는 점토대토기문화와 수석리유형이 유행하게 된다. 점토대토기문화는 토기 구연부 형태의 변화에 착안하여 원형 및 삼각형 점토대토기로 대별되는데, B.C.2세기경 삼각형 점토대토기 문화단계에 이르러서는 철기시대로 접어든 것으로 본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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