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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

[한민족과 고조선 한]_4장

by 늘별~*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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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석기시대 유적과 유물
1) 신석기 초창기 유적 제주 고산리.

 지상낙원의 섬 제주 고산리에 신석기인이 자리를 잡다.
  우리 땅에 최초로 신석기시대 문화흔적을 남긴 제주 고산리유적지는 제주공항이 있는 제주시에서 멀리 떨어진 서편 해안
고산리 유적지 전경
가 오지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지는 비교적 평탄한 지역으로, 유물의 산재범위는 약 150,000㎡로 남북 1,000m 동서 150m정도이다. 고산리유적지는 주변에 65m높이의 수월봉과 148m의 당산봉 야산이 있고, 차귀도를 중심으로 빼어난 해안절경과 석양에 해지는 모습은 황홀경을 연출하여 일만 년 전 초기 신석기인 들이 생활터전으로 삼았지 않았나 짐작이 된다. 차귀도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호종단이라는 중국 사람이 장차 중국에 대항할 형상을 지녔다하여 이 섬의 지맥과 수맥을 끊어놓고 돌아가려하는데 갑자기 한라산신이 날쌘 매가 되어 날아와 이들이 탄 배를 침몰시켰다 해서 차귀도 라는 이름이 전해져오고 있다. 이러한 마을내력을 유명한 지관이 고산리 주변경관을 차귀 10경으로 지어 고산리 일만 년의 역사를 찬양하고 있는 유서 깊은 지역이라 하겠다. 필자는 고산리 유적지에서 바라보이는 제주 바다를 보면서 최초의 신석기 유적지가 왜 내륙이 아닌 제주섬의 최서편에 자리 잡았나 궁금증을 가지고 6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한동안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고산리유적은 1987년 한 농부의 신고 후  제주대학 박물관의 발굴조사로 한반도내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독특한 유물구성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유물은 석기가 대부분이고 토기 편은 소량이다. 석기는 3,000여점이 채집 또는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박편이고 모양을 갖춘 석기는 약 390여 점이다. 종류는 석촉이 가장 많고 긁개 · 첨두기 · 돌날석기 등이 있는데 전부 눌러떼기 기법으로 제작된 5㎝ 미만의 소형석기들이다. 토기는 심발의  아가리주변에 3줄의 태선융기문을 돌린 덧무늬토기와 짚이나 동물의 털 같은 것을 혼합소성한 질이 거친 토기들이 출토되었는데 기형은 편평하고 아가리가 내경하거나 직립한 심발형 이다. 이 유물들은 모두 6,400BP에 폭발한 일본 아카호야 화산재 층 밑에서 출토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30 제주 고산리 유적 발굴유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 동북아시아 초창기 신석기문화를 간직한 유적
  고산리 유적 유물조합은 일정시기에 유입된 것이 분명하며 그 시기는 후기 구석기 최말기의 토기가 발견되는 동북아 초기 신석기시대 전개과정에서 찾아진다. 동북아 전체의 문화양상은 러시아의 아무르강유역, 연해주, 일본 열도 등 후기구석기 최 말기에서 신석기 초기로 연결되는 전환기의 문화적 양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고산리 유물 조합상은 아무르강 하류유적의 연대와 비교하여 적용하면 11,000~10,000BP에 상한을 들 수 있다. 실제로 고산리유물의 탄소연대 최고 측정치는 10,180±65BP로 나왔다.  고산리  신석기유적지에 주민유입이 11,000~10,000BP경에 이루어졌다면 당시 해수면의 상승과정의 기후로 볼 때 11,000년 전 급격한 해수면 상승과정에서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지만 육로를 통한 유입이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31 
  이렇게 입도한 신석기인은 제주도 전역을 무대로 활동하게 된다. 현재 제주도에서 고산리식 토기와 석기가 확인되는 유적은 월령리 유적(고산리에서 북동 8㎞지점) · 도두동 유적(고산리에서 북동 40㎞지점) · 삼양동 삼화지구 유적(고산리에서 북동 45㎞지점  · 강정동 유적(고산리에서 남동으로 32㎞지점) 등이 있다. 이들 유적은 유물 집중도로 보아 고산리를 중심캠프로 두고 이루어진 분파과정의 유적으로 해석된다. 
 고산리토기는 한반도내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으며 아무르강 하류 역에서 발생한 오시포프카문화 요소들이 사할린이나 훗카이도를 거쳐 일본본토로 유입되고 동해안을 따라 제주도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설과 중국 동북지방을 가로질러 대륙으로 노출된 황해평원의 강줄기를 따라 제주도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주장되고 있다.32 
 석기 조합상은  세석핵 · 석촉 · 밀개 · 새기개 등의 후기 구석기 전통의 석기와 갈돌 · 갈판 · 마제석부 등의 새로운 마제석기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특징적인 것으로 세석핵 · 석촉과 대형갈판 · 갈돌을 들 수 있다.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부정형 세석핵은 격지를 소재로 한 퇴화형의 세석핵으로 소멸기의 양상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강정동 유적에서 몸체와 타격면 조정 등 정형성을 띈 세석핵이 확인되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전남지역의 후기 구석기유적인 월평 · 장년리 · 금평리 유적 등의 세석인 문화와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석촉은 제주도 초창기의 유적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고 있으며 특히 물고기형 석촉은 고산리 유적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물고기형 석촉을 제외하면 화대리 · 기곡 · 신평 유적 등 육지부에 위치한 후기구석기 말기 유적의 석촉과 제작방식이 형태적으로 동일하다. 이외의 유협형 첨두기나 밀개 · 새기개의 유물 조합상은 한반도 후기구석기 말기의 유적 군에서 보이는 것과 동일하다. 
 대형 갈판과 갈돌은 신석기 초창기 단계에 처음 등장하는 유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로 도토리나 근 경류의 채집활동이 확대됨에 따라 생겨난 도구로 신북 유적의 홈돌과 월평 유적의 소형절구에서부터 제분구의 사용이 예상되며 초창기 단계의 갈돌 · 갈판의 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세석핵 · 석촉 · 갈돌 · 갈판 등 특징적인 초창기단계의 석기 조합상으로 볼 때 고산리 문화는 한반도 남부지역의 후기 구석기시대 관련유적과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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